여행

삼척에 가서 바다열차를 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2. 11. 12. 21:24

 

 

 

지난 주말은 처남내외 등 열 명이 동해안에 있는 삼척을 다녀왔다. 원래는 일 년에 한 번씩 봄에 만나서 국내여행도 하고, 또 다들 여건이 될 때는 해외여행도 하면서 우애를 다지다가 몇 년 전부터는 봄과 가을에 두 번 만나서 이번처럼 여기저기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보면 혼자나 부부 둘 만이 다니는 것보다는 이렇게 같이 여러 형제가 어울려서 여행을 하게 되면 재미도 있고, 여행의 즐거움도 혼자나 둘이 하는 것보다 배가 되는 것 같다.

 

우선 한동안 떨어져 살았던 형제들과 같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면 형제간에 없는 정도 생겨서 두터운 정을 쌓을 수 있는데다가 가보지 못했던 명소나 관광지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오는 일석이조의 즐거움도 준다.

 

이제 처남들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코스로 삼척에서 강릉으로 출발하는 바다관광열차를 탔다. 잠시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어린 아이들처럼 아무 근심걱정 없이 넓고 시원한 바다를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열차는 색깔부터가 일반열차하고 달랐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다 쪽 창을 보고 계단식으로 된 의자에 앉게 되어 있었다. 나도 이런 열차는 처음 타 보는 것이라서 조금은 생소했지만, 의자에 앉아보니 편안하게 먼 바다까지 바라볼 수가 있었다. 기차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바로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바닷가를 달리다가 때로는 크고 작은 마을과 산을 지나갔다. 삼척에서 한 시간 가까이 달려서 정동진역에서 우리는 내렸다. 정동진은 아주 오래전에 마누라하고도 왔었고, 또 아이들하고도 와 보았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정동진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좁으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백사장과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가 머리에 떠오른다. 오늘은 바람이 없는데도 파도가 높아서 바다 멀리에서 밀려와 모래사장으로 부서져 나가는 물거품이 보기가 좋다.

 

우리 일행은 강릉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바다열차를 타고 다시 삼척으로 내려와 역에서 6-70리 되는 준경묘를 가 보았다. 준경묘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산소가 있는 곳이다. 산을 올라가는 입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어둠이 깔리기 전에 내려올 욕심으로 우리는 오르막 산길을 열심히 걸어야 했다. 2km 되는 산길 중에 1km 넘게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져서 힘이 들고 땀이 흘렀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흙으로 이어지는 평지의 산길이 나오고, 굵직굵직하고 곧은 적송이 길 양쪽으로 가득하다. 그길을 따라 얼마 걷지 않아 준경묘가 나왔다. 묘지는 널따랗게 자리를 잡았고, 그 주위엔 적송이 에워싸고 있다. 준경묘에서 내려오다 왼쪽으로 보면 특이한 소나무를 보게 되는데 보은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하고 결혼한 신부소나무가 있었다. 굵고 곧게 자란 약 100년 된 소나무인데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의 마누라가 되는 셈이다. 사람들이나 동물들은 둘이 가까이 있어야 마누라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소나무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누라가 될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준경묘에서 뒷산을 따라 올라가다가 우측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1,353m의 두타산 정상이 나온다.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야간 산행으로 두타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계곡을 따라 내려오기도 했었다. 그 때도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길이 없고 경사가 가팔라서 고생을 더 많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삼척 밑에 있는 근덕으로 내려와 시스포빌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창밖으로는 바다가 잘 내려다 보였다. 막내 처남이 임원으로 가서 회를 떠와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회안주로 소주잔을 나누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는 이어졌다. 그러다가 콘도에서 밖으로 나가니 바로 바다백사장과 맞닿았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를 반복하는 백사장을 한참을 걸었다.

 

이튿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파도가 멀리서 밀려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모래사장에 부딪혀 물거품이 길게 퍼지고를 반복한다. 여태까지 살면서 백사장에 파도가 부서지는 물거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았다.

 

비가 오기 때문에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환선굴은 다들 갔다가 왔다고 하여 환선굴 옆에 있는 대금굴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원래 대금굴은 삼척시청에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데 비오는 날이라 막연하게 들어가지 않겠나 싶어 삼척에서 한 시간을 달려 대금굴까지 갔으나 오후 2시 반 표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덕풍계곡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비는 오다말다를 반복하더니 우리가 차에 내려서 덕풍계곡을 올라갈 때는 가늘던 빗방울이 굵어졌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바위에 매어놓은 밧줄을 잡고 매달려 지나가기도 했다. 비를 맞아 젖은 바위는 등산화를 신은 사람도 미그러질 만큼 걷기가 쉽지 않았는데 운동화 신고 걷는 일행은 몇 번을 넘어지고서야 소폭포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비도 내리고, 길도 미끄러워 시간 반 정도 올라가다가 소폭포에서 온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올라갈 때 돌로 징검다리를 놓아 건넜는데 내려올 때는 물이 불어나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려야 건널 수가 있었다. 여름 같으면 꽤 시원했겠지만 초겨울이다 보니 발은 시리고 온 몸까지 썰렁함을 느껴야 했다.

 

 

우린 부지런히 내려와 계곡 상류에 있는 민박집에서 동동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 여행은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 왔는데도 여기저기에 아직도 고운 단풍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올 해는 여느 해와 달리 때늦은 가을여행이라 아예 단풍구경은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도 절정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단풍이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대단한 행운이고 많이 고마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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