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한다는 봄날이 어제인가 했는데 여름과 가을은 건너뛰었던지 기억에서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데도 이렇게 겨울의 문턱에 와 있다. 아침뉴스에 강원도와 충청도 산악지방에는 올해 들어 첫눈까지 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세월 따라 계절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 사람들 모습까지 덩달아 이 세월이라는 놈을 따라가려고 애를 쓰는 듯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오전이 다갈 무렵 바깥을 나가니 날은 스산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은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잔뜩 웅크리고 거리를 다녔다. 행인들 모습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머리를 깎은 지가 꽤 되어 걸어서 얼마 되지 않는 이발소에 들어가니 이발소에는 주인 혼자서 손님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발을 하려고 한 이틀 수염을 깎지 않아서 덥수룩해진 수염과 머리를 깎고 보니 사람모습은 말끔해졌지만 염색을 해서 감춰졌던 흰머리가 드러나 세월이 가고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케 했다. 지난번 머리 깎을 때보다 군데군데 된서리를 맞은 듯 더 많이 새하얗다. 머리까지 세월을 따라가는 내 모습을 이리저리 거울에 비춰보다가 계절이 겨울초입이고 보니 내 인생도 초겨울 쯤 온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늦가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발을 한 내 모습에서는 한 겨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계절 탓인지 아니면 실제 변한 내 모습에 놀랐는지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는 세월을 인력으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되나가나 아무렇게나 살을 수도 없으니 고민은 깊어 갔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았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삶도 그들의 눈으로 봐도 모나지 않고, 티내지 않게 지금까지는 살아왔다고 본다.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표와 가치에 부합하는지 따져보고 싶지 않다. 다만 될 수 있으면 내 주변을 둘러보고 주위사람들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여 그들과 같이 ‘나눔의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설사 고단한 삶이 된다고 해도 그런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도 보람된 일이 아닐까 한다.
오늘은 깊어가는 늦가을, 아니 초겨울의 문턱에서 좀처럼 되돌아 볼 수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 고마운 하루였다. 그동안 회사 다닐 때는 바쁘게 사느라고 이런저런 생각 없이 살았고, 2년여 쉬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여행도 하고, 오랜 기간 운동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하고 텅 비었었는데 오늘 내 모습을 돌아보고 채워야 할 뭔가를 찾았으니 천만다행이다 싶다.
내 인생에 늦가을이면 어떻고, 초겨울이면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런 것들은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붙들어 놓을 수도 없는 세월만 탓하기보다 그 세월 속에 어떻게 묻어갈까를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그 답을 찾아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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