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문경까지 가서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길을 초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걸었다. 서울에서 일곱 명이 내려가고 청주친구들이 열한명이 참석을 해서 모두 열여덟 명이 문경새재를 넘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서울을 출발할 때가 오전 8시였는데 충주 휴게소에 잠시 쉬면서 커피 한잔 씩 마시고 바로 출발했는데도 괴산 연풍에 있는 수옥정폭포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반이었다. 거기까지 두 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폭포를 흔히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물줄기만 봐도 기분이 금방 좋아진다. 그 앞에서 일부 청주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간단히 하고 바로 옛 과거 길을 걷기 위해 조령3관문 올라가는 주차장으로 이동하다 보니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가 나왔다. 그 옆으로는 팬션, 카페 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거길 지나 얼마 안가 3관문 주차장이 나왔다.
비는 부술부슬 오는데도 우리는 차를 문경 쪽으로 보내고 걷기 시작했다. 원래 이 길은 전에 직장 다닐 때 회의를 수안보에서 많이 하다 보니 회의 끝나는 마지막 날은 빼놓지 않고 으레 걷는 길이었다. 그러다 보니 봄부터 겨울까지 안 걸어 본 계절이 없을 정도로 이 길을 많이 걸었고, 얼마 전에는 처가식구들과도 이 길을 같이 걸었으며, 또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 여섯 부부가 같이 이 길을 걷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곳에 와서 수를 헤아릴 수없이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는데도 싫지 않고 늘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길을 처음에 걸은 것이 80년대 중반이었으니 젊었던 시절부터 걸어서 지금까지 걷고 있으니 어찌 추억이 깃들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궂은비는 3관문으로 올라가는 내내 내렸다. 우의를 입은 친구들은 그렇잖아도 더운데 더 땀을 흘리는 것 같다. 어떤 친구는 아예 우의를 벗고 그냥 비를 맞으며 갔다. 포장길로 가다가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미끈미끈한 적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거기서 10여분 올라가니 3관문 바로 못 미쳐 돌로 제작한 ‘선비상’이 나오고 3관문이 나왔다. 우리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싸 갖고 간 김밥과 과일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조금 전까지는 충북 괴산이었지만 산마루를 넘어서부터는 경상도 문경이다. 3관문이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구별하는 표지물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연풍에서 고개까지 올라오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었지만 3관문을 지나고부터는 흙길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긴 내리막의 흙길인데 걷기가 참, 편하다. 왼쪽이 개울이어서 많은 계곡물이 내려가며 물소리 또한 크게 들린다. 길 오른쪽은 내려가는 경사가 있고, 도랑이 좁아서 빠른 속도로 물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길 따라 내려가면 내려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한 두 사람이 맨발로 걷는 것이 보이더니 이제는 많은 사람이 맨발로 이 길을 걷고 있다.
어느 해인가 겨울에 이 길을 걸었는데 활엽수나무에 잎새는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안개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었던지 장관이었다. 또 늦가을에 여기를 걸을 때는 길가에 많은 솔잎이 떨어져 있어서 발짝을 뗄 때마다 폭신폭신한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3관문에서 내려오다 보면 2관문까지는 긴 아름다리 소나무가 많아서 햇볕이 나면 그윽한 솔향기가 코끝에 닿는다. 이렇게 이 길을 걸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서 그걸 느끼지 못했다. 2관문이 저기 보이고, 개울은 다시 우리가 걷는 길 오른 쪽으로 이어지고 도랑은 왼쪽으로 바뀌었다.
2관문을 지나자 이제는 걷는 길이 사람들로 붐빈다.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오면서도 올라오는 사람들 표정은 모두 밝다. 여기부터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다. 산에서 길옆으로 떨어지는 소폭포도 있고, 조금 내려오다 보면 작은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그곳에서 10여분 내려오면 ‘팔왕휴게소’가 나온다. 이 휴게소는 부부가 독일에서 음악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두 분이 다 섹소폰을 잘 불어 휴게소를 찾는 사람들한테 좋은 팬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회사사람들과도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이 집에 들러서 문경의 명물인 '조껍데기막걸리'에 도토리묵, 파전 등으로 요기를 하곤 했다. 또 처가식구들하고도 와서 막걸리와 파전을 시켜서 먹다가 분위기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추억이 깃든 집이다. 이번에도 점심 약속시간이 늦지만 않았다면 잠깐 들러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냥 지나쳐야 했다.10여분 더 내려가니 오른 쪽으로 전에 왕건촬영지인 ‘영화셋트장‘과 맨발로 걷는 체험장이 나왔다.
영남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서 오른쪽 개울 건너로는 생태학습장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왼쪽으로는 잘 지어놓은 옛길박물관이 보였다. 이 밑까지 내려오고서야 알았는데 오늘이 문경시에서 주관하는 ‘문경새재맨발걷기축제’날이었다. 그래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그렇게 많았던게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3시간 가까이 걸어서 주차장에 도착해서 다시 차를 타고 예천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쌍계천송어집’으로 가서 오후 3시가 넘어서 송어회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도 문경시내로 들어가 친구들과 노래방도 가고 순대국집도 가서 못 다한 정을 나누었다.
이번 행사 때 서울에서 같이 간 병숙이 친구한테 많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아침을 못 먹고 올 것을 대비해서 김밥부터 시작해서 찹쌀떡에 족발까지 그리고 맥주, 소주, 마른안주 등 없는 것 없이 다 챙겨서 오늘 행사를 빛내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이 행사를 추진하고, 끝까지 안전운전 때문에 제대로 술 한 잔도 못한 교순이 친구한테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건강하게 잘 있다가 또 보세, 내 친구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룡포, 도산서원, 청량사를 다녀오다 (0) | 2011.11.02 |
---|---|
소금강, 통일전망대, 백담사를 가다 (0) | 2011.10.31 |
연천에 동막골을 가다 (0) | 2011.08.16 |
고향에 가다 (0) | 2011.05.15 |
봄에 가본 원산도 (0) | 2011.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