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초등학교 다닐 때는 개울 옆으로 소로가 있어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울에 들어가 멱도 감고 고기도 잡았는데 1980년 둑을 막아 물을 가둔 이후로는 맑은 시냇물이 여울져 흐르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종암(용곡)저수지는 위치적으로 충북 미원에서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특별하게 오염원이 없다보니 빙어가 서식할 정도로 저수지가 깨끗하다. 저수지가 생기고부터 한동안 누구나 아무한테 구애받지 않고 낚시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언제부터인가 사인(私人)이 농어촌공사를 통하여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승인을 받아 낚시를 하는 사람은 일정한 금액의 돈을 내야만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5천원, 만원하더니 지금은 만 5천원이라고 하는데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려면 돈을 주고부터는 내 고향에 와도 낚시를 하지를 않았다. 오래 전이기는 해도 이곳에서 내가 낚시를 할 때는 떡붕어도 한 마리 없었고, 붕어도 누런 참붕어만이 나오고 그랬다. 늦은 봄인가, 초여름인가 물이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 상류지역 논두렁 앞에서 한 칸 반 낚싯대로 40cm가 넘는 월척도 낚아 올렸고, 릴을 사용하여 여러 번 월척붕어를 잡기도 했다.
여름이기는 해도 올해처럼 이렇게 덥지는 않았을 때였다. 지금은 다 커서 장가까지 갔지만 어린 나의 작은 아들을 데리고 내 고향에 있는 저수지로 낚시를 갔었다. 그 때만해도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아이를 어머니한테 맡겨놓고 저수지로 밤낚시를 나갔는데 아빠를 찾으며 칭얼댄다고 서너 살 된 손자를 업고 낚시터로 나와서 할 수 없이 그 애를 내 낚시하는데 옆에 재워놓고 밤낚시를 마저 하고, 어머니는 집에 들어가셨다가 나중에 나오셔서 아이를 업고 집으로 가셨던 일도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 대청마루에는 옥수수와 찐빵을 언제 만들어 쪄놓았는지 한 바구니가 있었다.
그리고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 안 계신 둘째 형님과 함께 이곳 종암 저수지에 와서 낚시로 꽤 많은 고기를 잡았던 기억도 있는가 하면 같이 근무하던 직장동료들과 봉고차로 같이 와서 하룻밤을 새가며 낚시를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저수지 가장자리에 낚시를 할 수 있는 좌대모양의 방가로를 만들어 놓고 돈을 주면 편안하게 쉬면서 낚시를 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도회지 가까운 곳에 상업적으로 만들어 놓은 낚시터도 아닌데 이런 산골짝에 인위적으로 만든 방가로가 물위에 떠있다는 것이 보기에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리에 있는 저수지는 옛날의 나의 낚시터로 지금은 잔뜩 추억만 갖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 때로는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참기 어려운 고난에 빠트려 인내를 시험하기도 했다. 이 저수지가 생기기 전부터 여름이면 냇가 여울에 가서 피라미, 불거지 낚시를 하던 나로서는 비록 지금은 낚시를 하지 않더라도 이 종암 저수지가 오래도록 마음에 기억될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에는 어머니를 선진요양병원으로 모시다 (0) | 2016.09.11 |
---|---|
안양샘병원 안내자의 허술한 안내는 없는 것보다 못하다 (0) | 2016.09.09 |
충북대병원으로 큰형수님의 문병을 가다 (0) | 2016.08.30 |
오늘도 고단한 하루였다 (0) | 2016.08.27 |
손자와 같이 청계계곡을 또 가다 (0) | 2016.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