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충북대병원으로 큰형수님의 문병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6. 8. 30. 02:22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지만 8월 들어서는 보통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우환(憂患)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그렇잖아도 축 처진 어깨를 더 처지게 했다.

 

지난 8월 초에는 부산에 사는 막내 동생 제수씨가 지병이 악화되어 왼쪽다리를 절단했고, 한 주전에는 요양병원에 계셨던 어머니가 호흡곤란과 경기(驚氣)가 있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충북 미원에 사시는 큰형수께서 폐암진단을 받았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고 해도 8월 한 달은 우리 가족에게는 잔인한 한 달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오늘은 안산에 사시는 누님내외를 모시고 마누라와 같이 청주에 있는 충북대병원으로 찾아가 얼마 전에 입원하신 큰형수님을 문병했다. 8월 초에도 찐빵과 옥수수를 쪄서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뵈러올 때 무거운 것도 마다않고 시동생을 먹이기 위해 들고 오셨는가하면 부산대병원에 입원한 막내제수씨가 다리를 절단했다고 하니 우리가 모시고 간다고 해도 막내동서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가 위로를 해준다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다녀오시기도 했다.

 

그런 형수님께서 일주일 전에 충북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것도 치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몹쓸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여러 가지의 검사가 끝났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우리가 형수님이 입원한 병실을 찾을 때도 둘째 딸과 검사를 하고 오는 중이었다. 수척해지신 형수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형수도 연실 두 손을 번갈아 가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큰형수님은 스무 살에 우리 집 9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어린 시동생들과 시누이를 돌보며 힘든 농사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렇게 어렵게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늘 얼굴이 밝으셨고, 시부모 공경하며 시동생, 시누이 보비위도 잘 맞춰줬다. 특히 마음씀씀이가 습습하여 어려운 살림에도 항상 넉넉했다. 10여 년 전에 아들, 딸 시집·장가보내고 고향에 와 사신다고 내려오셨는데 저렇게 깊은 병에 걸리어 병원에 계시니 형수가 참으로 딱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떡해야 하는가?

 

형수님, 어서 툴툴 털고 일어나시오. 잠깐 한눈 팔다가 자빠졌다고 생각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