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그날도 오늘처럼 오전에 시작한 눈이 오후 저녁까지 이어졌을 때였다. 온통 산과 들이 흰 눈으로 뒤덮여 새하얀 세상으로 변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겨울방학을 해서 시골에 내려갔었고, 그 친구는 타지에 살다가 우리 앞집으로 이사를 왔었지만, 진천에서 여고를 다닐 때여서 방학 때나 집에를 오곤 했었다. 그해 여름방학 때 처음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누었어도 연락하고 지낼 정도는 아니어서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서야 그녀를 볼 수가 있었다. 바로 그날이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밤이었다.
시골의 겨울밤은 도회지와 달라 7시나 8시만 돼도 한 밤중이다. 요즘에도 그런데 그 때 당시는 더 고요했다. 더구나 눈이 하루 종일 내려서인지 낮에도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를 않더니 어둠이 찾아온 저녁 7시에는 개 짖는 소리만 가끔 들릴 뿐 신작로에는 인적이 끊긴지 오래였다. 오직 어둠 속에서 내리는 눈이 쌓여 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초저녁 겨울밤이었다.
저녁시간에 그 친구하고 만나서 지금이나 그때나 시골이다 보니 어딜 가서 얘기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여름 같으면 아무데서나 편안하게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겨울은 날씨도 춥고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려서 갈만한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신작로를 같이 걷기위해 동네 작은 길을 걸어 나와 신작로에 접어들기 전에 조그만 갈래도랑을 건늘 때였다. 눈이 덮여 있어서 잘 보지 못했는지 흐르는 물은 많지 않았지만, 그 도랑에 미끄러져 주저앉다보니 옷이 물에 젖어버려 할 수 없이 100여 미터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집에 가서 옷을 금방 갈아입고 다시 나온다던 그 친구는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았다.
지금은 성도 이름도 잊혀져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이렇게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이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그 때 젖은 옷을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못 나왔는지 아니면 부모님한테 혼날 것 같아서 나오지 못했는지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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