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의도 성모병원에 문상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2. 9. 19. 02:37

 

 

 

오늘은 아침 일찍이 도서관으로 가 책을 한창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오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급히 나와서 전화를 받으니 고교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챙겨 나와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내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도착을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들이 오지 않아서 소주를 병반 정도 마시고 있으니 하나, 둘씩 들어왔다.

 

그래서 그 친구들하고 조금 전까지 같이 있다가 집에를 와서 이렇게 여기에다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친구는 나하고 같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 때만해도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하고 계셨는데 돈을 아주 많이 버셨다.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그걸 아들들이 지키지를 못하였다.그 사업을 큰아들한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나셨다가 큰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내 친구가 고인을 모시고 있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성모병원에서 잠깐 바깥을 나갔다오니 상주들이 다 어디가고 보이질 않아서 옆에 사람한테 물어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91세 되신 어머니가 듣고서 쓰러졌다고 해서 다들 거기로 몰려갔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빈소를 상주들이 지켜야 하는데도 그렇지를 못했다. 잘 못하면 줄초상을 치루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안 좋은 일은 겹친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조금 더 있으면 가을인데 이렇게 가을을 남기고 떠나면 자식들은 춥지 않아서 초상을 치루는 데는 나을지는 몰라도 그건 남들이 하는 얘기이고, 자식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가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지금도 비오는 날이든지, 또 눈이 오는 날은 창문 밖으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곤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게 사람이고, 내 몸에 아버지가 물려준 뜨거운 피가 흐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도 90이 넘으신 어머님이 계신다. 아직도 그나마 건강하셔서 한시름 잊고 살지만 밤이 늦은 시간이라든가 새벽녘에 전화가 오면 깜짝깜짝 놀라서 전화를 받곤 한다. 이건 연로하신 어머님이 내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100년도 못사는데도 사는 동안은 많은 걸 겪고 산다. 물론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안 좋은 일이 더 많다.그래도 다들 이 세상을 살고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젊은 친구들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만 더 나이 들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살아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낫고, 또 부모한테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고, 시장에 가서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 한 손이라도 사갖고 들어간 자손들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서운함을 덜 느낄 것이다.

 

오늘 조문을 갔다가 와서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글을 써 보았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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