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산대병원으로 막내제수씨의 병문안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6. 8. 6. 17:27

 


지난 달 중순부터 시작한 더위는 여느 해 여름더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무덥고 습해서 집안이나 그늘을 찾아도 흐르는 땀이 멈춰지지 않았다. 낮과 밤이 온통 찜통이 된지 오래라서 땀을 식히고 멎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도회지에서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더위를 피해 산이나 바다로 피서를 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고스란히 그 엄청난 더위를 집에서 감당하려니 고역이었다.

 

그러던 중에 7월 말경 부산 사는 막내 동생한테서 밤중에 전화를 한통 받고 나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밤은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만 뒤척이다가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그 이튿날 아침이 되어 마누라한테 그 얘기를 하고, 점심나절이 다되어 시골에서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뵈러 오시는 큰형수한테 말씀을 드리고 나니 다소나마 마음이 진정되었다.

 

부산에 사는 내 막내 동생은 젊은 시절 부산에 가서 직장을 다니다 보니 하숙을 했었다. 그러다가 하숙을 하던 하숙집 큰딸하고 결혼을 했고, 장인어른이 안 계시다보니 어린 처제와 처남을 보살피며 처갓집을 건사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중년에 들어 제수씨가 당뇨로 고생을 할 때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호를 하더니 작년에 제수씨가 소뇌증진단을 받아 걷지를 잘 못할 때도 싫다는 내색 없이 한결같이 제수씨를 돌보았다. 올봄에는 장모님을 여의기도 했다. 그런데다가 이번에는 제수씨의 오른쪽 무릎 위쪽부터 다리를 절단했다고 하니 어찌 동생이 애처롭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처럼 아우한테 불운이 겹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이런 말이 있다. “행운이 오면 조심하고, 불운할 때는 인내하라그리고 슬픔은 남들과 같이 나눌 때 반감한다고 한다.

 

큰형수님은 우리보다 하루 앞서 양산에 있는 부산대병원을 찾았고, 우리는 하루 늦게 부산대병원으로 막내 제수씨 문병을 갔다. 안산에 사시는 누님이 저녁에 우리 집으로 와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이 내 차로 같이 갔다. 단거리는 몰라도 부산까지의 장거리 운행은 근래에는 없었던 일이라 나도 다소 부담이 되었는데 마누라는 속으로 걱정이 많이 되었는지 얼굴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휴가철인데도 차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바꿔 타고, 다시 김천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 대구-부산 민자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양산까지 가는 내내 밀리지 않고 정해진 속도를 다 달릴 수가 있었다. 쉬엄쉬엄 갔는데도 양산에 있는 부산대병원에 도착하니 막 오전 11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부산대병원 7층 독방 앞에서 동생을 만나니 몰골은 꺼칠한데도 그나마 얼굴은 밝아 보여서 다행이다 싶다. 제수씨가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데다가 다리를 절단하여 깨어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주치의의 얘기 때문에 2-3일의 고비를 잘 넘겨야 된다고 하면서 내게 전화를 하던 나의 동생, 깨어날 때까지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려야만 했던 내 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절단하기까지의 과정에 혼자 고민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막내아우가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 보여 진다. 병실에 들어가니 이불로 덮은 다리 한 쪽이 푹 꺼져 있는 모습이 보이고, 제수씨는 눈을 못 뜨고 울기만 하신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말로 위로를 한다고 해도 제수씨의 마음과 상처를 달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혹독한 시련이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같이 숨쉬고, 얘기하며 앞으로도 살아갈 수가 있다.

 

제수씨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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