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이렇게 길게 느껴본 지가 나이 먹고는 한두 번 있었는데 오늘이 그랬다. 오늘 사실은 딱 세 가지만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어떡하다 보니 대여섯 가지의 일을 보았으니 어찌 길게 느끼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면 오늘 한 일을 차근차근 하나씩 얘기를 해본다. 오늘 첫 번째는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밥 먹자마자 안양시청을 가서 도시건설분과 위원장을 만났다. 그런데 나는 여자인지를 모르고 약 7-8분 미팅시간이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아서 요즘은 높은 사람들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지각을 하니 이런 것이 옛날 같으면 너그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요즘 한국인의 정서하고는 조금은 동떨어진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차가 밀려서 봐주면 좋겠다고 해서 그래도 많이 참았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에 만나는 변호사, 관공서 직원 할 것 없이 한두 번 지각한 게 아니고 건뜻하면 그런다. 그런데다가 오늘 또 미팅약속을 안 지키니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해봤다. 두 번째로 오늘 만난 사람은 비산동 이마트 앞에 공사를 하고 있는 삼호건설에 민ㅇ기소장을 만나서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원성이 높으니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을 보통이하로 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
그 사이 어디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서울장례식장에 문상을 가야할 문자였다. 그래서 조문을 가려고 마음은 먹고 있었고, 오후에 짬을 내서 들렀다 가면 되겠다싶어서 잠시 잊고 다른 일을 하다 보니 또 다른 문자가 “상주 통장번호 000-00-000000”가 찍혔다. 그건 메르스로 인해 조문객들을 배려해준 측면도 있지만, 이건 아니다싶어 구로구의 가산디지탈단지 역에 내려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조문을 하고, 다시 네 번째 행선지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3호선으로 환승하여 안국역에 내려 2번 출구에서 다시 마을버스 2번을 갈아 타고 감사원을 갔었다. 감사원에 가서 가지고 간 서류를 접수하려고 하니 주민들이 서명한 연명부가 규정에 있는 규격서류가 아니라면서 뭐라고 하길래 이건 아니다싶어 한 마디 했더니 감사원에 접수하는 서류는 재판을 위해서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와 똑 같이 해야 서류를 받아줄지 말지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에 어느 관청을 가던 상당히 민주화 되어 있는데 유독 감사원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되돌아 나오다 보니 플래카드에 감사원장은 누가 와야 한다고 써놓은 현수막이 보였다. 그래, 감사원장이 바뀌어야 여기 감사원도 민원인을 소중히 여길 것 같아서 그나마 위안을 받고 돌아왔다.
오늘 다섯 번째 행선지로는 고등학교 친구들 다섯 부부가 영등포의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거길 부지런히 마누라하고 같이 갔다. 가서 보니 식당을 정하지를 않아서 날씨도 덥고 고기를 구어 먹는 것보다 아구찜이나 해물찜 이런 음식을 먹으면 땀을 덜 흘릴 것 같아서 찾다 보니 ‘맛자랑맛집’ 식당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식당 사장님도 인심이 야박하지는 않는 것 같고, 음식 맛도 상당했는데 조개, 바지락 등 어패류가 소담스럽게 있었지만, 껍데기만 있고 실제로 알맹이가 없어서 물어 보았다. 거짓말하면 바지락을 수도권 일대에 납품하는 친구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 바로 들통이 날 건데 바른 말을 해서 앞으로는 그 집을 단골로 하려고 한다.
여섯 번째로는 식당 사장님이 소개해주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두어 시간 놀다 보니 이렇게 밤이 늦은 시간에 귀가를 하여 오늘 있었던 얘기를 해본다. 그래도 이렇게 나이 들어 불러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이 세상을 잘 살은 거고, 또 앞으로도 잘 살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고맙고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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