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직장 OB선배들과 같이 경복궁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4. 11. 13. 22:52
 

 

오늘은 대입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입시한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8년 만에 찾아오는 한파라고 매스콤에서는 떠들썩했다여태껏 따듯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까 더 추운 것 같다. 계절상으로는 날씨가 추울 때도 되었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한테는 이처럼 기온변화가 심할 때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춥다고 다들 호들갑을 떠니까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바깥을 나가보니 바람은 불지만 견딜만한 날씨였다.

 

평소보다 아침을 조금 일찍 먹고 집을 나선 시간이 오전 8시 반이었다. 전철을 타니 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1호선을 타고 가다가 종로3가역에서 하차하여 3호선으로 바꿔 타고 첫 번째 역인 안국역에서 내렸다.

 

오늘 날씨도 썰렁하고 수능시험을 보는 날인데도 안국역을 온 이유는 동아소시오 그룹 임원출신모임인 우성회의 소분과모임에서 매월 역사탐방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씨조선 500년 동안 영욕(榮辱)의 세월의 한가운데 있었던 경복궁을 가보기 위해서다. 이 모임에서의 역사기행은 수년전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면 어디든 탐방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처음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경복궁이라면 가까운 시내에 있는데도 일부러 마음먹고 가면 몰라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좀처럼 가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오늘은 직장선배님들이 잘 닦아놓은 역사탐방호에 무임승차하여 경복궁을 다녀온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선 경복궁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자. 경복궁은 서울에 있는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된다. 조선왕조를 열었던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경복궁을 지은 것이다. 1394(태조3) 12월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에 완공하였다. 궁의 이름은 시경에서 나오는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궁궐은 이조 3대 임금인 태종이 잠깐 이용하다가 세종, 문종, 단종이 주로 경복궁에서 기거했다. 그러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하여 별궁인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비워 놓았다가 경복궁이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이름이 무색하듯 빈번한 화재로 시련을 겪었다. 1543(중종38) 동궁에서 일어난 화재와 1553(명종8)에 일어난 화재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이듬해 복구되었다. 그로부터 38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불타서 약 270여 년 간 폐허상태로 내버려두었다가 1865(고종2) 흥선 대원군에 의해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되어 3년 후에 고종이 경복궁으로 이사를 왔지만 8년 후에 또다시 대규모화재로 창덕궁으로 이사를 갔다가 12년 후 다시 경복궁으로 옮기는 등 여러 차례의 피해와 복구가 거듭되었다.

 

1904년 이곳에 통감부가 들어섰고,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이었던 자리에 조선총독부건물의 건립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가 199612월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로 일부가 복구되었다.(다음백과사전:경복궁 참조)

 

이렇듯 경복궁은 조선의 역사와 같이 시작하여 500년 동안 이 자리에서 화재로 인한 수난과 시련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다. 그러던 경복궁이 최근 들어서야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복원사업이 일부는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처럼 조선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고, 살아 숨 쉬었던 경복궁을 전 직장 OB선배님들과 같이 다녀오게 되어서 감회가 깊다. 더구나 회장님의 자세하고 거침없는 설명은 조선의 역사는 물론이고 경복궁의 내력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했다. 첫 역사기행이지만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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